작성일 : 15-03-17 09:58
진정한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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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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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앉아 휴식할 줄 모른다는 데서 비롯한다”고 말했다. 한심하고 우습게 들리는 말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이렇게 가만히 쉬는 방법에 익숙하지 않다. 생각하면 쉬운 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림자를 잡는 것처럼 불가능해 보이며 심지어는 체벌의 형태로 아무것도 안하고 방안에 가만히 앉아있게 하기도 한다.
아는 스님이 무문관이라는 수행처에 들어갔었다. 무문관은 작은 방안에 들어가 약속한 날까지는 외부로 나오지 않고 작은 구멍으로 들여보내는 식사만을 먹고 오직 수행만 하는 곳이다. 공부하고 싶었지만 주변에 공부를 방해하는 것들이 많아 원없이 공부만 하고 싶다던 스님의 원대로 모든 것과 단절된 채 오직 자기 자신하고만 시간을 보냈다. 무문관에 들어간지 보름 째 되는 날 소리 치며 울어다고 한다. 미치겠다고, 정말로 미치겠다고.
그 스님이 나에게 물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게 뭐냐고. 내가 뭐냐고 반문하니까, 그 스님 말씀이 “내 몸에서 생기는 느낌이 그렇고 무섭고 고통스러운지 몰랐습니다.”라고 하였다.
몸에서 일어나는 느낌들이 말한다고 하였다. 보고 싶고, 먹고 싶고, 듣고 싶고, 만지고 싶고, 느끼고 싶다고. 느낌들의 요구에 응해주지 않자 느낌들이 성을 내고 발악을 하여 잠도 못자고 가만히 앉아 있게 하지도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제발 나좀 내버려 두면 안되겠니?’하고 달래보지만 열리지 않는 문을 자꾸 쳐다보게 만들고 느낌들의 요구사항을 목록으로 만들어 밖에 나가면 하나씩 실행해 보겠다고 굳은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내 몸의 느낌들이 너무 감당할 수 없어 살려달라고 울고 소리쳤다고 한다. 작은 방안에서 오직 내 몸의 느낌과 감정들만 상대하다보니 질려서 못살겠다고. 나로부터 도망가고 싶다고. 내 기억으로 부터, 내 희망으로 부터도 도망가고 싶다고. 희망이 작은 방에서는 또 다른 감옥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무문관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몰랐다고 한다.
생각을 빼앗기며 사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를, 왜 그런 조건에 쌓여 사는 것을 행복이라 여기는지, 그리고 내 느낌의 요구조건을 잘 충족시키며 살려고 왜 그렇게 바둥거리며 사는지 이젠 잘 알겠다고.
그런데 너무 억울하다고 하였다. 남도 아닌 내가 나를 제일 힘들게 하니까. 쉬는 시간 없이 계속해서 부려먹으면서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게 하니까.
무간지옥이라는 것이 있다. 사이가 없다고 해서 무간지옥인데 쉬는 사이 없이 계속해서 고통을 받는다고 한다. 쉬는 사이 없이 누군가의 지배를 받고 있다면, 이 또한 무간노동, 무간지배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 살려지는 것인지 도통 알 수 없고 이래나 저래나 휴식이라는 향수는 항상 우리의 마음자리는 맴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내 자신을 지켜보면 무수히 발생하고 있는 여러 느낌들을 알 수 있다. 뭐라고 규정지을 수 없지만 항상 내 정신작용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느낌들의 성질을 가만히 관찰해보면 불편하고 불만족스러우며 불안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항상 무언가를 하게끔 충동질을 한다. 그래서 혹자가 말하기를 우리는 태어나면서 불안과 불만족 증후군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 마음속의 불편, 불안, 허전함을 잊거나 채우기 위해 바깥에서 그 해답을 찾고 산다. 쉽게 말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큰 어려움이 없이 이런 조건들이 충족되면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그렇지 않으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 나은 조건을 위해 혹은 지금 누리고 있는 조건을 유지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쓰며 산다.
하고 싶은 것을 조금이나마 실현하고 살고 싶지만, 주변 여건이나 현실에 의해 제한과 구속을 당할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스트레스는 고질적인 스토커가 되버렸고, 간혹 자신의 이상과 현실이 너무나 차이가 커서 깊은 상실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기도 한다.
끊임없는 편안함과 만족을 위해 문명의 이기도 나날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편안해 진만큼 또 다른 노동의 필요성도 같이 발생하여 주어진 여가 시간은 오히려 줄어든 느낌이다. 경영과 관리 기법의 발달로 인해 적은 인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라는 다그침은 스트레스의 큰 주범이 된지 오래다. 물질적 생활수준과 정신적 여유와의 균형을 외쳐보지만 갈등만 증폭될 뿐 불균형 현상은 별 변화가 없다.
내적인 혹은 외적인 요인에 의해 몸과 마음이 불안하고 불편한 상태가 지속되면 어떤 해결책을 갈구하게 된다. 이 때 친구하고 대화도 해보고 종교에 깊이 의지해 보기도 하며, 용한 역술가에게 까지 찾아가 답답함을 해소해 보려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은 외부의 힘과 조건에 의해서가 아닌 순수한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화시켜 보려 명상이라는 문을 두드려 본다.
명상에서는 외부 조건이 아닌 내면의 어떤 상태에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을 찾는다. 외부 조건들로 우리의 느낌들을 충족하려 하기 보다는 우리를 힘들게 하는 요소들을 이해하고 그 영향력을 약화시켜 가면서 삶을 힘들지 않게 만들어 간다. 힘들지만 않으면 살만하다고 여긴다. 이런 상태가 되었을 때 휴식과 만족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이 들며 영적인 발전에 대해 생각해볼 여유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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